미팅 요청
학생들에게 미팅 요청을 종종 받다 보니, "이런 방식으로 미팅을 요청하고 진행하고 정리하면 좋겠다" 하는 워크플로우가 있어서 한번 이것에 대해서 써보려 합니다. 이것도 역시 뭔가 정해진 원칙이라기보다는 제가 겪다 보면서 느낀 점을 바탕으로 adhoc 하게 정리한 점들입니다.
첫 번째로, 미팅을 했으면 한다고 연락을 하면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도 주지 않고 시간을 잡자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교수님 시간 되실 때 미팅 한 번 가능하실까요" 또는 "다음 주에 잠깐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이런 식으로 요청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제 연구실 학생이면 서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고,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아서 괜찮을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연구실 학생이라도 이런 식으로 미팅을 요청하면 저 혼자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러나 걱정 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약간 공포추리 소설 읽는 느낌이 드는 거죠.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가. 내가 어떤 얘기를 할 준비를 해야 하나.'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아래와 같은 식으로라도 짧게 적어주면서 미팅을 요청하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 석사 지원 관련해서 진로 상담을 드리고 싶습니다.
- 현재 하고 있는 ㅇㅇ 연구에서 아이디어에 대해 피드백을 받고 싶습니다.
- 이번 학기 ㅇㅇ 수업 과제 진행 관련해서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이 정도 설명만 있어도 저도 그에 맞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필요하면 자료를 미리 한번 봐둘 수도 있어서 저한테는 도움이 많이 됩니다.
두 번째로, 연구 관련 미팅을 한 뒤에는 그 내용을 간단하게라도 정리해서 남겨서 미팅 참석자들에게 공유를 해주면 좋겠다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어떤 포인트들에 대해서 얘기를 했는지, 누가 어떤 일을 하기로 했고, 다음 미팅 때까지 어떤 일들이 되어 있으면 좋겠는지 정리를 하는 거죠. 이걸 안 하면 매번 미팅 때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다가 시간이 흘러버리면서 서로 지쳐버리면서 연구 속도가 더 떨어지고 모멘텀을 잃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연구 관련 미팅을 하고 나면 보통은 "다음 미팅 전까지 A를 해보고, B에 대해서는 리터러쳐를 더 찾아보고, C는 교수님이 확인해 오기로 했다"처럼 각자가 할 일들이 정리됩니다. 그런데 그걸 머릿속에만 남겨두고 넘어가면, 한 주 또는 두 주가 지났을 때 서로 기억하는 내용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다음 미팅에서 "지난번에 우리가 뭐 하기로 했었죠?"라는 이야기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는 거죠.
미팅이 끝난 뒤에 학생 쪽에서 아주 짧게라도 정리 메일을 한 번 보내주면 매우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말인즉슨 그렇게 하는 분들이 별로 없다...) 정말 짧게 불릿포인트로만 정리해 줘도 됩니다. 예를 들어,
- 데이터 어떻게 어떻게 처리하고, 모델 뭐 돌려보기
- 페이퍼 뭐뭐 읽기
- 누구누구한테 뭐에 대해서 연락해 보기
이 정도로만 적어줘도 다음 미팅 때 훨씬 빠르게 맥락이 정리가 됩니다. 물론 저도 이렇게 항상 잘하는 것은 아닌데, 이렇게 해야 일이 잘 굴러간다는 점은 이해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하려면 일단 평소에 이메일을 자주 확인하고 마치 메신저 쓰듯이 이메일을 좀 써야 하긴 합니다. 추가로 학생이 이렇게 팔로우업을 딱딱 해주면 "이 학생이 자기 프로젝트를 스스로 관리하고 있구나"라는 느낌도 강하게 받게 되죠.
마지막으로, 저는 기본적으로 학생들과의 개인 미팅에 열려 있고, 특히 연구실 학생들과 하는 미팅은 요청이 오면 최대한의 우선순위를 두고 잡는 것을 원칙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학생에게 "지금쯤이면 한 번 이야기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미팅 잡을까요?"라고 연락을 하는 상황이면 이미 좀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지금쯤이면 한 번 미팅 안 하나" 싶은 시점이 있는데, 그때 학생 쪽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조급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좀 답답한 생각이 듭니다. 다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미팅을 무작정 잡는 것도 모멘텀을 죽이는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준비 안 된 상황에서 미팅하는 것이 준비가 완전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미팅을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의지하는 교수님 한 분이 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는 얘기를 저에게 전해주셨습니다. "보통 교수를 찾아가서 얘기를 해도 별 도움이 안 되거나 별 상관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교수가 어떤 측면에서든 너와 클릭이 되면 도움이 매우 크게 되는 경우가 있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저도 그 말을 듣고 매우 공감이 갔습니다. 제가 주변에서 봐도 교수 입장에서는 학생이 연락을 하면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다만 그 미팅의 첫 시작은 본인이 해야 합니다. "한 번 상의해 보는 게 낫겠다" 싶은 순간이 오면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짧게라도 메일을 보내서 미팅을 요청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